잠언 1:20-33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잠언 세번째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 나눈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아비의 훈계와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 것을 당부하며
그 주된 훈계와 교훈의 내용은 - 악한자와 함께 하지 말라는 것 이였습니다.
이익이 있는 것 같지만
그 일의 결국은 생명을 잃는다는 내용이 지난 시간에 살펴본 19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이어 20절에서는 앞의 내용과 대비하여
지혜에 대하여 말씀을 시작합니다.
20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21 훤화하는 길 머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가로되
지혜가 우리를 향하여 소리치며 부른다는 것입니다.
찾아가기 어렵고 아는 사람만 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
길거리에서 – 광장에서 – 복잡한 사거리와 같은 길머리에서 –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부른다는 것입니다.
곧 특별한 사람만 만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누구나 볼 수 있고 -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장소에서 외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악한일은 음침한 곳에서 우리를 꾀어냅니다.
지혜는 큰거리에서 흔한 길목에서 크게 외쳐댑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속삭이는 악한 소리에는 귀기울이고 – 외치는 지혜에는 외면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어리석음입니다.
지혜가 만나기 어려운 장소에 꼭꼭 숨겨있지 않습니다.
특별한 사람만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만날 수 있고 –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곳에서 소리친다는 사실입니다.
이어서 말씀을 보겠습니다.
22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유유상종 의 뜻을 아실 것입니다.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귄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끼리끼리라는 말입니다.
어리석은 이유가 있습니다. 어리석은 소리를 듣고 그것을 좋아합니다.
절망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절망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싫음에도 불구하고
소망의 소리를 멀리합니다.
거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자리를 좋아하고 그 모양을 따라합니다.
게으른 이유가 있습니다. 할 일을 미루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미련한 이유가 있습니다. 지혜와 지식에 귀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23절은 책망을 따라 네 생각을 돌이키고 – 네 자세를 바르게 할 것을 말합니다.
그때에 지혜의 정신을 부어주고 지혜의 생각을 알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23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모두 잠언을 통하여
어리석음에서 지혜로 돌아서기를 축복합니다.
미련함에서 명철함으로 나아오기를 축복합니다.
게으름에서 부지런함으로 바꿔지기를 축복합니다.
거만한자리에서 일어나 겸손의 자리에 앉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음 24절 부터는
지혜가 우리를 향하여 큰거리에서 소리침에도 불구하고 듣지 아니하고
교훈과 책망을 외면하였을 때에
어떠한 일이 나타나는가를 우리에게 경고하여 주고 있습니다.
24 내가 부를찌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찌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25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26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27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28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지혜를 듣지 않았을 때 – 외면하여 뒤돌아섰을 때에
우리는 폭풍같은 재앙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광풍같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때에는 우리가 외쳐 불러도 대답하지 않으며
아무리 찾아도 만나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29. 30절에 말씀합니다.
29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30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라
교훈과 책망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지혜는 교훈과 책망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외면하고 듣기 싫어한다면 우리는 재앙과 두려움을 만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이유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앞서 7절에 말씀대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 잠언 1장의 결론입니다.
31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32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33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지혜를 외면하고 눈앞의 이익에 악인의 꾀를 부리는 자는
결국 어리석고 미련한 길에 놓이며 멸망의 길을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훈과 책망의 지혜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안심하여 살며 평안하여 산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시편 1:6절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라는 말씀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악인의 길은 망하는 길입니다.
눈앞에 보기에 잘되는 것 같아도 그길은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는 멸망의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의 길을 가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오늘도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책망이 싫어도 그 책망에 귀기울여 우리의 잘못된 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로
바꾸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의인의 길을 따라 살기를 결단하여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결단하여야 합니다.
눈앞의 이익을 위하여 악한 일에 참여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외하는 일을 뒤로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어리석고 미련한 길 – 재앙과 두려움이 가득한 멸망의 길을 향해 달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길을 가십니다.
오늘도 많은 결정과 결단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오늘도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 서기도 하지만 –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내 작은 이익을 얻고자 하는 어리석은 마음이 끼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믿는 것을 내세워서 손해를 봐야 한다면 손해볼 것을 결단하면 어떻겠습니까?
내가 기도해서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일이 된다면 부끄러운 길을 가면 어떻겠습니까?
내가 예배드려서 그 시간 때문에 오늘 금전적인 손해를 봐야 한다면 그 돈은 안벌기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내가 좋아하는 일이여도 그 일이 죄악되고 음란한 일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이라면 그 좋아하는 것을 이제 버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것이 결단이고 그것이 변화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거듭남이고 그것이 성화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고 그것이 자녀들을 향한 진정한 믿음교육 아니겠습니까?
자기가 진짜가 아닐지언정 사람들은 진짜를 진짜로 알아보는 눈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내가 진짜 구원자되신 예수님을 믿는데도 불구하고
진짜가 아닌 가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면 – 사람들은 우리를 가짜로 보게 됩니다.
손해봐도 진짜가 되십시오. 부끄러운 것 같아도 진짜가 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곁에는 진짜만 있기 시작합니다.
진짜가 진짜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가짜는 진짜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돈이 없을 지언정 – 예수믿는 것이 가짜인 무늬만 신앙인은 사람은 되지 않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돈없는게 궁색한게 아닙니다. 돈없는게 비참한게 아닙니다.
예수를 품에 안고도 예수와 상관없는 척 사는 삶이 궁색하고 어리석은 것이며
예수를 아는데도 불구하고 그분의 도우심과 상관없이 사는 삶이 비참하고 미련한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입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지식과 지혜가 충만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abcXYZ, 세종대왕,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