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고난주간입니다.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죄와 허물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믿으십니까?
믿어지는 믿음이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이 없다고 가족이나 자녀를 구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멘이 안나오는 분도 있으실 것입니다. 괜챦습니다. 그럴수 있습니다.
입으로 아멘한다고 믿어지는 것도 아니고 아멘이 되지 않는다고 믿음이 없는 것 또한 아닙니다.
믿음이 우리 눈에 그렇게 판단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다만 아무 노력도 없이 예배를 뒷전으로 두고 믿음이 거저 생기기는 또 힘듭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으려고 하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또한 믿음이라는 것이 우리의 노력만으로 다 되는 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도 깨달아지고 믿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편 34:15-19 의 말씀입니다.
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16.여호와의 얼굴은 행악하는 자를 대하사 저희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
17.의인이 외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저희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18.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19.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읽은 구절중에 기억나시는 구절이 있으십니까?
고난이라는 단어 아닌가요? 고난주간이어서 더더욱 그렇지요
그런데 이문장이 좀 이상합니다.
고난이 많은 사람이 있는데 누구냐 – 죄많은 사람이 아니예요.
의인이라고 얘기를 한다 말이죠
의인이 고난이 많다.
고난이 좋은 것이 아닌데 – 왜 성경은 의인이 고난이 많다고 하는거냐 말이죠.
그렇다면
의인이 고난이 많은데 - 의인으로 살려고 아등바등 애쓸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이 성경구절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말씀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물론 성경이 함정을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니고요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우리의 귀가 함정인 것입니다.
전체의 맥락과 상관없이
내 귀에, 내눈에 턱하고 걸리는 이 짧은 문장 하나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왜 마음에 걸릴까요 - 싫은 거죠.
의인은 적어도 고난이 없어야지 하는 바램이 우리에게 많은 것입니다.
실상은 어떻든지간에 그래도 성경은 의인은 고난이 없다고 말해주기를
바라는 우리의 기대가 이 문장에 대해 반한 감정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한번 보시지요. 이 말씀이 정말 알려주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요?
15-19 까지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다.
여호와의 눈이 어디를 향하느냐
의인을 향한다.
여호와의 귀가 누구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계시느냐
의인의 부르짖음이다
누가 외치면 여호와가 들으시냐 의인의 외침이다.
여호와는 누구를 환난에서 건지시느냐 – 의인이다.
누구를 고난에서 건지시느냐 – 의인이다.
죄인도 의인도 어느 누구나 인생에 고난이 없는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의인이 고난이 많다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고난에 대한 문제해결이 어떻게 되느냐를 성경은 말해주는 것입니다.
의인은 여호와께서 고난에서 건지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계속 강조하고 계시는 이 말씀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의인이 고난이 많구나
성경도 그렇게 얘기하는 구나
그러니 의인이 되는 것 – 의인으로 살려고 애쓰는 것 - 바보짓이다 –
같은 성경을 보고도 이상한 결론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 – 잘 다니셔야 합니다.
같은 구절가지도 이상한 말하는 - 교회아닌 교회가 많다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깊게 깨닫게 되는 지혜가 있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계속이어서 보시겠습니다.
18.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가까이 하시느냐?
마음이 상한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상한 마음을 가진 분 계십니까?
하나님의 위로가 오늘 이 시간에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다른 사람 다 뒤돌아서도 하나님은 당신을 뒤돌아서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붙잡고 통회하는 시간을 갖으십시오.
하나님의 구원이 그에게 있다고
오늘 읽으신 성경이 분명하게 보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첫날 말씀드린 고난주간 일주일 말씀의 서론이 있습니다.
일주일 내내 우리가 고민할 질문이 있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중요한가? 입니다.
첫날 – 고난을 감수하라
베드로전서 3: 17.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무엇이 중요하냐
고난이 있어도 선한양심을 따라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기억하시지요.
누명을 쓸지언정 – 감옥에 갈지언정 - 죄악의 길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선한 일에 고난이 수반된다 하면 -
고난을 감수하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삶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날 – 고난도 유익하다
시119: 67.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이 없을 때 내맘대로 내뜻대로 살았는데 –
고난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지키게 되었다.
이것처럼 값진일이 어디있는가?
말씀하는 것입니다.
시119: 71.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고난으로 내가 주의 뜻을 깨닫는다면 그 고난은 유익한 일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날인 - 오늘 말씀 - 누가 나를 건질 것인가?입니다.
누가 나의 환란과 고난과 고통에서 나를 건질 수 있을 것 같으세요?
세상의 상사가? 사장님이 건지십니까? 학교선생님이? 선배가? 애인이?
부모님이? 대통령이요?
코로나19 감염병으로 권고사직을 무급휴가를 당하는 사람들이 부지기 수입니다
우리의 안정과 평안을 누가 보장하고 누가 지킵니까?
세상입니까?
우리의 안정과 평안을 지키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고난에서 건지십니다.
고난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하는데
우리는 고난에만 집중하니까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본문 34:16-17을 보겠습니다.
16.여호와의 얼굴은 행악하는 자를 대하사 저희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
17.의인이 외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저희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행악하는 자는 하나님이 자취를 아예 없애실 계획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의인은 환난에서 건지신다는 거예요.
결국
하나님의 얼굴이 죄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심판자로써 나타나지만
의인이 외칠때는 들으시고 모든 환난에서 건지시는
구원자로 나타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고난에 집중하지 말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지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의인으로 살아야지요.
누가 의인입니까? 죄를 해결한 사람이 의인입니다.
죄를 누가 해결할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뿐이 없습니다.
곧 예수안에 있는 사람이 의인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의인으로 살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이번 고난주간을 통하여서 깨달아 마음에 새기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깨달은 것과 같이 의인의 삶을 살 것을 결단하기 바랍니다.
눈앞에 있는 유익, 그것을 누리는 편안한 삶..
그것은 너무나 달콤한 일입니다.
강한 자와 부한 자가 되는 것 – 우리 모두의 바람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악한자와 악한 길을 도모하는 일이라면
가지않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런 일은 세상에서 생각보다 많이 일어납니다.
죄와 거짓과 손잡지 말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악한자 거짓된자가 부하게 되고 권력을 갖고 힘을 휘두르는 일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 하지 말기 바랍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 자취도 없애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선을 행하나 생각지 않게 고난이 오고, 억울하고 누명쓰는 일이 올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면 하나님께서 그 고난에서 구원하시는 일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에 무엇이 중요합니까?
고난이 중요합니까? 의인이 되는게 중요한 것입니다.
누가 나를 건지실 것인가?
여호와 하나님이 건지시기를 원한다면
고난의 길이 될지언정 의인의 길을 가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행하는 성도님들마다
그 인생길이 열어지는 축복이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함께 말씀을 기억하여서 기도하시겠습니다.
먼저 말씀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서 기도하십시오.
둘째 가족, 부부간에 부모형제 자녀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셋째 교회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교회에서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는 힘이 있도록
성도들을 옳게 바르게 인도하는 생명의 말씀이 되도록
각 가정에 있지만 함께 힘을 모아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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